[SEED CLASS] 글쓰기와 UX, ‘컨텍스트(Context)의 힘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글 잘 쓰는 법을 물으면 자주 하는 대답이죠. 치열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글과 싸운다고도 하고, 산고의 노력과 인내로 글을 ‘낳는다’고도 표현합니다.

지난해 말부터 라이트브레인은 ‘역량’이라는 핵심가치 아래 ‘나의 경험을 전파하라’는 실천으로 라이트브레이너의 글을 담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며 서로의 역량을 키워가자는 취지입니다.

글쓰기가 천직인 작가들이 그럴진대 평범한 우리들은 어떨까요?
심심할 때 카페 랩킨에 끄적거리는 낙서도 아니고, 침대 밑에 숨겨두고 나만 보는 일기도 아니고…
공개된 회사 블로그에 내 이름 석자를 걸고, 내 생각을 드러낸다는 건 조심스럽고 두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7번째 SEED Class,
유시민 작가와의 글쓰기 특강은 글쓰기를 ‘제발’ 즐기고픈 라이트브레이너의 열망 속에 그렇게 마련되었습니다.

왜 가방끈 좀 길다는 사람들은 책을 이렇게 어렵게 쓰는 거예요?

제가 유시민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기름기 없이 담백하고 읽기 편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한자어나 외래어, 전문용어들을 남발하지 않으면서 글이 격조 있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친절히 설명하지만 잘난 척 하지 않고, 군더더기가 없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해석하는 데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두 번 세 번 반복해 읽어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해석이 힘든 어려운 책들도 참 많습니다.
일부러 골탕 먹이느라 그렇게 쓴 건지 심술이 날 때도 있으니까요.
언젠가 잠시 일을 쉴 때, ‘문탁 네트워크’라는 동네 인문학 공간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도 어려운 책들이 많아, 당시 모임을 이끄시던 문탁 선생님께 질문 드린 기억이 나네요.

“왜 가방끈 좀 길다는 사람들은 책을 이렇게 어렵게 쓰는 거예요?”
가방끈이 길지만 글을 쉽게 쓰는 유시민 작가의 이번 강의을 들으며, 그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하면서 말이죠.

글짓기? 글쓰기! “말하듯이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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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는 ‘논리적 글쓰기’ 입니다.
소설, 시, 희곡와 같은 ‘글짓기’와 논리적 글쓰기의 경계를 분명히 합니다.
글짓기는 어느 정도 재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지만, 논리적 글쓰기는 얼마든지 연습과 훈련으로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수필, 에세이, 평론, 르포, 전기, 보고서, 논문 등이 논리적 글쓰기에 해당합니다.

글쓰기는 ‘나의 두뇌와 심장에 있는 것’을 ‘글’이라는 문자신호를 통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를 음성신호로 내보내면 바로 ‘말’이 되는 거죠.
말은 너무 잘하지만, 글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글짓기’에 대한 부담 때문입니다.

‘K팝스타’ 심사위원인 박진영이 늘 하는 말인 “말하듯이 노래하라”는 것은 글쓰기에도 적용됩니다.
실력이나 기교가 뛰어나진 않지만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가수가 있는 것처럼, 그대로 말하듯이 나의 속을 정확히 표현해 내는 것만으로도 공감을 일으키는 좋은 글이 될 수 있습니다.

불통의 시대? “원래 소통은 힘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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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와 마음에 있는 내용을 말, 글, 그림, 사진 등 여러 도구를 통해 표현할 때, 온전히 그 둘이 똑같기는 사실 불가능합니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가 많고, 어느 순간 생각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변형이 일어나죠.

그에 더해, 내가 표현한 내용은 보거나 듣는 사람에 의해 ‘재해석’됩니다.
해석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고, 서로 다른 해석이 얹어진 채 인용되고 전달되면서 왜곡과 오해가 늘어갑니다.

근본적으로 ‘소통’이라는 것이 원래 힘든 것이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똑같은 사건을 접해도 그 사람의 세계관, 태도, 경험, 우선순위, 처한 상황과 맥락 등에 따라 모두 반응이 다릅니다. 최근 우리 나라에 발생한 여러 크고 작은 사건들에 보여지는 세대간, 지역간 양극화 현상을 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때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과는 아무래도 소통이 쉬워집니다.
보통 서로 ‘코드’가 잘 맞는다고 표현하죠.

논리적 글은 나와 코드가 맞고 안 맞고를 떠나, 누군가가 읽는다는 것을 전제로 최대한 나의 생각과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도록 써야 합니다. 내가 전달하는 글의 의도와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글의 이해를 돕는 컨텍스트(사실, 환경, 관계, 경험, 맥락, 이론 등)를 최대한 치밀하게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텍스트(Text)와 컨텍스트(Context), “아는 만큼 읽는다. 아는 만큼 쓴다”

텍스트(Text)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해석이 필요한 모든 것(말, 글, 사진, 그림, 사건 등)을 의미합니다.
컨텍스트(Context)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텍스트 해석에 유용한 모든 것(사실, 환경, 관계, 경험, 맥락, 이론 등)을 말합니다.

사례2

[2004년 퓰리처상 수상작 ‘소녀 노리는 독수리’ – 케빈 카터]

텍스트를 보고 사람들이 모두 다른 해석을 하는 것은 각자 가지고 있는 컨텍스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위 사진과 관련된 숨은 컨텍스트를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 1단계.
퓰리처상을 수상한 유명한 작품이다.
사진에 대한 느낌은 비참하다. 슬프다. 아이가 불쌍하다

– 2단계.
이 사진은 수단 남부에서 케빈 카터라는 작가가 1993년 2월 찍었다. 수단 아요드의 식량센터로 가는 도중에 우연히 마주친 모습으로, 굶주림에 지친 어린 소녀의 모습과 쓰러진 소녀를 먹이감으로 삼으려는 살찐 독수리가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셔터를 누른 후 그는 바로 독수리를 내 쫓고 소녀를 구해주었다.
최초로 지면에 게재된 것은 3월 23일치 뉴욕타임즈였으며, 퓰리처상을 받은 것은 1년이 더 지난 1994년 4월이다. 이 사진은 발표와 동시에 전세계의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나, 퓰리처상을 수상한 뒤 일부에서 촬영보다 먼저 소녀를 도왔어야 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지금까지도 “사람의 목숨에 우선하는 뉴스가치는 없다” 는 대표사례로 회자된다.

– 3단계
케빈 카터는 수상 3개월 뒤인 1994년 7월, 33세의 젊은 나이에 죄책감에 시달리다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4단계
퓰리처상 사진집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현장의 모든 사진기자들은 사람들을 만지지 말도록 지침을 받았다. 전염병을 옮길 위험이 있다는 이유였다.
케빈 카터는 그 전부터 그리고 그 후에도 기아와 전쟁의 참상 때문에 괴로워하던 휴머니티가 강한 뉴스사진가였다. 그는 뉴스사진가였고 그의 일에 충실했으며 그가 남긴 사진이 아프리카의 기아를 세계에 전파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 위 사진에 대한 좀더 정확한 컨텍스트는 다음 링크(http://photovil.hani.co.kr/45164)를 참고해 주십시오.

위와 같이 컨텍스트를 얼마나 알고 있는냐에 따라 텍스트를 해석하는 능력도 달라집니다.
만약 위 사진을 보고 글을 쓰라는 과제가 부여된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컨텍스트의 깊이에 따라 서로 다른 주제를 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상적인 사진의 구도’라든지 ‘기아의 참상’, ‘예술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성찰’, “케빈 카터는 과연 비난 받아야 마땅한가?” 등 자신이 아는 지식 내에서 다양한 논점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습니다.
즉, 아는 만큼 쓰고, 아는 만큼 읽어냅니다.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힘들고, 읽히지 않는 어려운 책이 있다면 잘못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작가는 2가지 경우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 작가가 컨텍스트를 충분히 포함하지 않았을 경우
둘째, 작가가 컨텍스트를 포함했으나, 독자가 해석해 내지 못하는 경우

컨텍스트를 많이 알수록 텍스트를 만났을 때 이해의 폭이 넓어집니다.
독해의 속도와 깊이와 시각이 달라집니다.
왜 이렇게 책을 어렵게 쓰냐며 불평했던 제가 부끄러워졌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책이 어려웠던 이유는 물론 작가 탓도 있을 수 있으나, 텍스트를 해석할 능력이 부족했던 제 잘못일 수 있습니다.

컨텍스트를 담은 UX, 가치 있는 디자인

UX 디자인에서도 컨텍스트란 단어가 매우 자주 중요하게 사용됩니다.
*컨텍스트의 사전적 의미는 어떠한 일의 ‘문맥’, ‘전후관계’, ‘정황’, ‘배경’, ‘환경’ 등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UX 디자인에서의 컨텍스트는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대하는 사용자의 행동패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의미합니다. 넓게는 사용자를 둘러싼 거시적 환경에서부터 특정한 태스크의 행동 이유 정도까지도 컨텍스트라고 말합니다.
(*한국통신학회지 정보와 통신 제29권 제7호, 컨텍스트 중심의 UX 디자인 방법론)

라이트브레인은 디자인라는 도구로 텍스트를 전달합니다.
눈으로만 인식하는 감각적인 디자인을 넘어 사용자의 컨텍스트와 기술과의 소통까지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치’ 있는 디자인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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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경험’이라는 업을 가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이해’입니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을 기본으로 환경, 기술, 과학,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는 컨텍스트를 파악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책’을 많이 읽는 것이라고 작가는 조언합니다.

글을 마치며 

역사, 철학, 경제, 문학, 뇌과학에 이르기까지 막힘 없이 이야기에 줄기를 뻗어가고,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는 줄기에 가지를 더하고 잎을 달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그의 말은 그의 글과 꼭 닮아 있었습니다.
책 속에서 만난 러시아의 어느 지역 역사를 현지인보다 깊이있게 줄줄이 꿰고, 언젠가 그곳을 꼭 여행하고 싶다며 꾸밈없이 눈을 반짝이는 그를 보며 “사람이 참 멋있다”라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습니다.

그가 가진 컨텍스트의 힘’에 반해버린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물론,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유시민’이라는 사람에 대한 컨텍스트가 함께 작용을 했겠죠.

오늘 전 그의 얘기를 들으며
내 평생 그저 머리와 가슴을 벅차 오르게 하는 책한권 한권 벗하며 살아도
참 풍요롭고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의 문턱을 넘어 글을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될 그 날을 위해
하루하루 부지런히 사유하고, 읽고, 쓰리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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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디자인 회사, 조그마한 회의실, 적은 인원의 초청에도 불구하고
한걸음에 달려와 귀한 시간 내주시고,
소중한 추억 남겨주신 유시민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 커뮤니케이션실 이민정